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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가득한 책방/에세이

느림보 마음(문태준)

by 더불어숲 2022. 12. 21.

시인 문태준이 느림으로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너무 빠른 세상에 문태준이 주는 쉴 겨를이 있는 생각!

 

살아오면서 내가 사랑했던 시간은
누군가의 말을 가만히 들을 때였다. 뒤로 물러설 때였다.
이 세상이 너무 신속하다.
쉴 겨를과, 나란히 가는 옆과, 늦게 뒤따라온 뒤를 살려 냈으면 한다.
세상의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 작가의 말 중에서

 

바쁜 것이 트로피이고 한가한 것이 불안한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책 속 한 토막

어느 날 나는 화난 코뿔소처럼 숨을 식식거리고 있는 나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해서 내 나름의 궁리 끝에 이 몇 가지 일을 평소에 해보기로 작심했던 것이다. ‘손에는 일을 줄여라, 몸에는 소유를 줄여라, 입에는 말을 줄여라, 대화에는 시비를 줄여라, 위에는 밥을 줄여라...‘


고개만 들면 곧바로 눈에 띄는 곳에 이 다섯 가지 항목을 적어두고서 틈이 나는 대로 점검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돌아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또 금방 잊어버리기를 잘한다. 우리는 눈이 바쁘고, 코가 바쁘고, 귀가 바쁘다. 우리의 마음에는 왜 빈방이 없는 것일까.


우리는 눈과 코와 귀를 저만치 떨어진 곳에 세워놓고 바깥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지, 바깥에 무슨 기변이 생겼는지 살피길 좋아한다. 바깥이 시끄럽지 않으면 살맛이 영 덜하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다른 사람의 입맛에 맞춰 살 수는 있어도 정작 내 마음의 궁핍은 관심이 대상이 아닌 듯해 보이기까지 한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의 생활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는 즐겨보되 내 마음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에는 별반 관심이 없는 듯하다.우리는 거실에서 켜 둔 드라마를 언제쯤 꺼 조용한 거실에서 살게 될까. 바깥에서 찾지 말고 신속히 내 마음에게로 돌아갈 일이다. 깨끗하게 비질된 마당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우리의 마음을 그곳 어디쯤 살게끔 하면 어떨까.


1초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들!

교차로 신호등 앞에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레이서가 된다.

신호등은 그 레이서들에게 이제 곧 출발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황색등을 켠다.

 

그런데 이게 왠일?

앞차가 미동도 없다.

왜?

이 바쁜 출근시간에 뭐 하자는 거야!!!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빵빵' 경적을 울렸다.

이 경적은 앞차에 주의를 주기 위하기보다 내가 지금 짜증이 가득하거든!!!

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는 이렇게 1초도 기다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농부는 겨우내 힘을 비축한 대지에 공기를 불어넣어 생명을 일깨운다.

그 생명은 봄의 단비를 먹고, 따가운 여름의 햇살로 몸을 키우고, 이슬이란 보약을 담아 가을이란 이름으로 결실을 맺는다. 

 

이렇듯 기다림 없는 것은 생명을 함축하지 못한다.

기다림은 지겨움이 아니다. 기다림은 사랑이고 축복이다.

이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담백한 법이다.

담백한 맛이 나는 그런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되련다. 

 

 

#문태준

#산문집

#느림보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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