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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의 발견(안도현)

by 더불어숲 2022. 12. 9.

안도현 시인이 시 절필 선언 후 처음 쓴 글인 《안도현의 발견》은 시인의 눈길이 머문 달큼한 일상의 발견 201편을 담은 산문집이다. 《안도현의 발견》에는 시간의 무게와 함께 쌓인 시인의 문학과 삶, 사람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 사람, 맛, 숨, 그리고 생활이라는 다섯 개의 부로 나뉘어 단순하지만 순수하게 투박하지만 담백하게 담겨 있다. 〈한겨레〉에 연재 당시 3.7 매라는 지면의 한계로 규격화될 수밖에 없었던 글은 책으로 나오면서 조금 더 숨 쉴 수 있게 되었고, 시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책 속 한 토막

무화과 꽃 - 안도현

무화과나무에 꽃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겉으로 화려하게 꽃을 드러내지 않을 뿐, 무화과 열매 속에 꽃이 들어 있다. 꽃을 몸속에 숨겨서 피우는 무화과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동지가 있다. 무화과 안에 사는 ‘좀벌’이다. 잘 익은 무화과를 자세히 보면 위쪽에 배꼽처럼 생긴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을 ‘숨어 있는 꽃차례’라고 한다.


살짝 벌어진 이 구멍은 무화과꽃의 수분을 위해 좀벌이 드나드는 통로 구실을 한다. 무화가가 익어가기 시작하는 여름철이면 무화과 속에서 임신한 암벌들이 온몸에 수꽃의 꽃가루를 묻히고 바깥으로 나온다. 이들은 곧바로 새로 생긴 다른 열매 속으로 들어가 산란을 한다. 이때 자신이 묻혀 온 수꽃의 꽃가루가 다른 열매의 암술에 닿게 된다. 이 산란 과정을 마치면 좀벌들은 생을 마감한다.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여름이 돌아올 때쯤 그 알들이 깨어난다. 무화과 열매 속에서 수컷 좀벌들은 암컷보다 일찍 부화하지만 짝짓기를 마치면 이내 무화과 속에서 죽는다. 수컷 좀벌은 세상 밖으로 한번 나와 보지도 못한다. 수컷들은 날개가 없으며 그 생김새도 애벌레와 비슷하다. 이들은 단 한번의 짝짓기를 위해 태어났다가 그 임무를 다하고 나면 그 자리에서 죽는다. 배가 볼록해진 임신한 암컷 좀벌들만 다시 무화과 열매 밖으로 기어 나온다.

무화과 없는 좀벌이 없고, 좀벌 없는 무화과도 없다.  이 둘의 공생관계는 끔찍하게 아름답다.


저자 - 안도현

1961년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비롯해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북항』,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까지 11권의 시집을 냈다.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 『냠냠』, 『기러기는 차갑다』 등의 동시집과 『물고기 똥을 눈 아이』, 『고양이의 복수』, 『눈썰매 타는 임금님』 등 여러 권의 동화를 썼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국내에서 100만 부를 넘긴 베스트셀러로 15개국의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되었다. 『백석평전』, 『그런 일』 등의 산문을 냈다. 현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다.


《안도현의 발견》에는 유독 ‘작고’, ‘나직하고’, ‘사소하고’, ‘별 볼일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만경강 둑길에서 만난 논병아리나 101전 101패의 전설적인 기록을 가진 ‘똥말’ 차밍걸, 곤달걀 속 껍질을 깨고 밖으로 걸어 나오지 못한 죽은 병아리가 그렇고, ‘어떻게든 견디는 게 삶인’ 냄비받침과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든 이웃들을 위해 늘 열려 있던 타인능해라는 이름의 운조루의 큰 쌀통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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