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면 다를수록』에서 최재천 교수는 동식물이 지니고 있는 재미있는 습성을 생태학자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하되 그들을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이란 독특한 동물이 가진 미욱한 점은 분명하게 지적한다. 특히 그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어우러짐을 추구하는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들이 사는 방식이 너무 이기적이란 점이다. 그러나 최재천 교수는 지치지 않고 자연과학의 중요성과 다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의 핵심에는 다양성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각 생명체는 너 나 할 것 없이 ‘특별한’ 존재이며, 이렇게 다른 모습들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메시지가 놓여 있다.
다르면 다를수록 | 최재천 생태 에세이
최재천 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17일
"다르면 다를수록 아름답고, 특별하고, 재미있다. 다양성은 사물의 원형이자 변화의 원동력이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우리는 자연의 습성과는 상관없이 우리 편리할 대로 농사를 지었다. 그래서 한 곳에 한 종류의 농작물만 길렀다. 이것은 해충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게 되었다. 조류 독감이 때를 불문하고 창궐하는 지금 우리는 유전적 다양성에 대해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최재천 교수는 말한다. 에스키모가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해 자기 아내를 생면부지의 사람과 잠자리를 하게 했다는 것을 보면 근친에 따른 문제는 심각했던 것 같다. 사실 과거 왕실문화에서도 근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가리키고 있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이다. 고갈된 유전적 다양성은 우리 인류의 미래까지 헤칠 정도로 심각하게 다가왔다. 지구 생물들은 진화라는 역사를 통해 서로 간의 유사성을 줄여 공존할 수 있도록 변화해 왔다. 이로 인해 우리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생물다양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열대지방은 생물다양성이 높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들이 발달했다. 반면 생물다양성이 와해된 지역은 언어다양성도 같이 감소했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사회의 다양성이야말로 우리가 더 풍요롭고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우리 인간 세상에 거품은 여러 부문에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자연스럽게 생기는 거품도 있지만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거품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고무풍선에 계속 공기를 넣으면 어느 순간에는 터져 버린다. 이렇듯 거품도 언젠가는 터져 버리고 만다. 거품이 재거된 세상은 빼앗은 자와 뺏긴 자만 남게 된다.
이런 우리 인간에게 참새들이 나서 거품은 허망한 것이라고, 사막의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라고 앞다퉈 말해주는 내용이 있어 분문 중 일부를 옮겨본다.
거품 없는 참새
참새 사회에서도 거품은 설 땅이 없다.
참새는 언뜻 보아 암수를 구별하기 쉽지 않으나 한 가지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가슴팍에 검은 깃털이 난 것은 수컷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암컷이다. 참새 암컷들은 가슴팍에 검은 깃털이 많은 수컷 참새를 좋아한다. 가슴팍의 검은 털은 수컷들 간에 우열을 가리는 신호로 쓰인다.
가슴에 검은 깃털이 많은 수컷일수록 대체로 나이도 많고 몸집도 비교적 큰 편이며 사회적 지위도 높다. 실제로 수컷 참새들이 서로의 가슴팍을 살피며 사회생활을 하는지 알기 위해,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 대학 연구진은 다음과 같은 실험을 수행했다. 그들은 가슴에 검은 깃털이 별로 많지 않은 비교적 낮은 계급의 수컷을 잡아서 검정색 매직펜으로 가슴을 시커멓게 칠한 다음 날려 보냈다.
그러자 유달리 시커먼 가슴팍을 내밀며 홀연히 나타난 무법자에게 수컷들은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리 오래지 않아 수컷들은 이 무법자가 생김만 늠름했지 영락없는 겁쟁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매서운 공격을 가했다.
그래서 이번엔 호전적인 성격을 만들어주기 위해 가슴을 시커멓게 하는 것은 물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주사해주었다. 그러자 이 수컷은 시비를 걸어오는 다른 수컷들을 정면으로 맞서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결과는 참혹하게도 허세를 부리던 수컷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아무리 외모가 그럴듯하고 싸울 때 용맹함을 지녔다 하더라도 실제 체력과 실력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이렇듯 참새 사회에서는 실속 없는 거품은 설 땅이 없다.
우리네 삶에서도 거품이 얼마나 허망한가.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 여성들이 모두 가슴팍에 난 털로 남성미를 가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일 그랬더라면 우리들 대부분은 서양 친구들에게 밀리고 말았을 테니 말이다.
다르면 다를수록 세상은 아름답고, 특별하고 재미있다.
개미와 진딧물, 꽃과 벌의 관계는 서로가 이득을 얻는 공생관계로 살아간다. 호랑이와 모기 같은 경쟁과 포식 그리고 기생 관계들도 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생태관계다. 이제 이런 공식은 폐기 처분되어야 한다. 우리 인간을 제외하고 대다수 생물들이 공생관계를 형성하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숭이와 공통 조상에서 분화되어 다르게 발전하여 지금에 이르렀던 것은 자연선택론에 따른 것이다. 우리 인간이 언제까지 자연의 선택을 받을지 아는 사람은 없다. 자연에게 우리 인간이 토사구팽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양성을 더욱 확대 재생산시켜야 한다. 한 곳에 한 종류의 농작물만 길렀더니 해충의 원산지가 되었듯이 우리 인간도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해충에게 잡혀 먹힐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본다.
다름을 틀림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여 의사소통에 많은 저해가 되고 있다. “다름(difference)”은 “다양성(diversity)”을 “틀림(incorrectness)”은 “그릇됨(wrongness)”을 의미한다. 다름과 틀림은 명백히 다른 의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생각과 달라'라고 말해야 할 때도 '내 생각과 틀려'라고 말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 둘은 엄연히 다름에도 분명하게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들이다. 아마도 우리 마음의 기저에 타인에 대한 배타성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므로 "네 말은 내 말과 다르기에 틀려"라는 것을 암시하게 된다. 이런 사고는 그릇되고 틀린 생각으로 낙인 되어 이해와 포용이 아닌 비난과 지적이란 문제를 잉태하게 된 것이다.
합리적 객관성 판단을 상실함으로 인해 나와 다른 주장에 대해 그릇된 것으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고 만다. 따라서 상대의 다른 생각과 말은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경청과 존중의 대상이 아닌 무시와 폄하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 인간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유롭고 합리적인 의견교환을 통해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을 증진시키는 데 있다. 다름은 경청과 존중의 대상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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