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는 조선의 역사 중 매우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고 있다.
정조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해이기도 한다.
특정 가문의 새도 정치가 득세했고, 고종 즉위와 함께 흥선대원군이 나와 파란만장이라 표현해야 맞을 정도의 정치역 역정을 드러낸 시기다.
이후 시기는 민씨 일족들의 전횡, 청과 일의 외세간섭,... 끝내는 이완용 등의 친일파 매국노가 일본 놈에게 국권을 보온 통에 식지 않게 담아다 바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국권을 지키려는 자와 그것에 기대어 사리사욕을 펼치려는 자들의 피티 기는 민족전쟁이 시작되었다.
해방 70년이 되었지만 우리는 그 때 친일파들을 숙청하고 처단하지 못한 과오로 인해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된 파열음만 계속되고 있다.
한국 산문선 9권은 조선 600년사 중 정조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19세기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 강점기 인물의 작품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글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대리 경험해 보길 바란다.
우리 민족의 기저에 무엇이, 어떤 정신이 깃들어 있었고, 민초들의 삶을 엿보는 기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내가 사는 집 곳곳의 공간마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의미의 이름을 붙여 불렀답니다.
책 속 한 토막
내가사는 집
군자가 학문을 거쳐 도에 들어가는 것은 물을 거쳐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문文을 얻지 못하면 방에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바깥문을 ‘원득문’이라 하였다. 처음 배울 때는 반드시 공간을 활짝 넓혀서 노닐지 않은 곳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바깥문 안쪽의 공터를 ‘만간대’라고 하였으니 지식의 ‘넓음’을 말한 것이다. 넓히고 난 뒤에는 또 방종하여 가지 않는 곳이 없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반드시 중용을 잡고서 밟아 나간다고 하여 중문을 ‘용중문’이라 하였다. 중용을 잡은 뒤에는 또 융통성 없이 하나에 고착되어 고집불통 일까봐 걱정된다. 그래서 반드시 마음을 비우고 이치를 밝혀야 하므로 중문을 들어서면 나오는 뜰을 ‘허백정’이라 하였다. 마음을 비우고 이치를 밟힌 뒤에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살피지 못할 것이 없다. 따라서 뜰을 지나 있는 사랑채의 마루를 ‘관원헌’이라 하였다. 살펴보는 곳이 아무리 멀더라도 전일하게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마루 옆의 방을 ‘수일재’라 하였다.
전일하게 지킨 뒤에는 일관되게 사고하지 않으면 제어할 수 없다. 따라서 그 곁방을 ‘지사료’라 하였다. 사고가 깊어지고 난 뒤에는 도가 몸에 갖춰져서 즐거움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안문을 ‘요락문’이라 하였다. 마음속에 간직한 것을 넉넉하게 즐길 수준이 되면 군자는 반드시 그 꽃과 열매를 밖에 펼치고자 한다. 따라서 안마당을 ‘식란정’이라 하였으니, 난은 그 꽃을 가리킨다. 꽃과 열매를 피웠어도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남들이 사랑하기는 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안마당에 있는 동산을 ‘견산대’라 하였으니, ‘산’은 높이 존중받음을 말한다.
존중받기만 하고 친구가 없으면 군자는 크게 잘못이라 여기므로 반드시 친구를 찾아 어울린다. 따라서 안채의 마루를 ‘아우당’이라 하였다. 친구와 어울려 지내게 되면 오래 머물러도 편안해야하지만 이는 억지로 할 수없다. 따라서 안채의 서쪽 침실을 ‘영수실’이라 하였다. 편안하게 온갖 복이 모여들고 고요함을 기르며 수를 누릴 것이니 이는 지인의 신이다. 따라서 안채의 동쪽 침실을 ‘정수합’이라 하였다. 이상은 밖에서부터 안으로 들어온 과정이다.
목차
9권 - 신선들의 도서관 | 홍길주 외
조선 말기
홍석주(洪奭周)
마음, 도, 문장(答金平仲論文書)
약의 복용(藥戒)
어머니 서영수합 묘표(先?貞敬夫人大邱徐氏墓表)
『계원필경』을 간행하는 서유구 관찰사께(答徐觀察準平書)
김매순(金邁淳)
『삼한의열녀전』 서문(三韓義烈女傳序)
바람의 집(風棲記)
파릉의 놀이(巴陵詩序)
홍직필(洪直弼)
여성 도학자 정일헌 묘지명(孺人晉州姜氏墓誌銘 幷序)
유본예(柳本藝)
바둑 두는 인생(棋說)
필사의 이유(書?說)
이문원의 노송나무(?文院老?記)
정우용(鄭友容)
『훈민정음』을 찾아서(與族弟左史善之書)
읍청루 유기(遊?淸樓記)
장서합기(藏書閤記)
조인영(趙寅永)
활래정기(活來亭記)
김정희(金正喜)
난 치는 법(與石坡 二)
「세한도」에 쓰다(與李藕船)
홍길주(洪吉周)
내가 사는 집(卜居識)
신선들의 도서관(海書)
꿈속에서 문장의 세계를 보다(釋夢)
용수원 병원 설립안(用壽院記)
작가의 서실 표롱각(??閣記)
이시원(李是遠)
개를 묻으며(?狗說)
조희룡(趙熙龍)
국수 김종귀(金鍾貴傳)
이만용(李晩用)
잠자는 인생의 즐거움(寐辨)
조두순(趙斗淳)
천재 시인 정수동(鄭壽銅傳)
바둑 이야기, 남병철에게 주다(碁說, 贈南原明)
홍한주(洪翰周)
솔고개의 가성각(嘉聲閣)
책, 도서관, 장서가(藏書家)
유신환(兪莘煥)
충무공의 쌍검명(李忠武公雙?銘)
사직단 근처 마을에서 책을 교정하다(稷下校書記)
김영작(金永爵)
삼정의 개혁 방안(三政議)
고매산관기(古梅山館記)
이상적(李尙迪)
고려 석탑에서 발견된 용단승설(記龍團勝雪)
정벽산 선생 묘지명(鄭碧山先生墓誌銘)
삽을 든 장님(書??)
조면호(趙冕鎬)
자기가 잘 모른다는 것을 잘 아는 선생(自知自不知先生傳)
심대윤(沈大允)
소반을 만들며(治木盤記)
박규수(朴珪壽)
그림은 대상을 충실히 재현해야 한다(錄顧亭林先生日知錄論畵跋)
신석희(申錫禧)
『담연재시고』 서문(覃?齋詩藁序)
효명 세자(孝明世子)
시는 꽃과 같으니(鶴石集序)
신헌(申櫶)
민보 제도(民堡輯說序)
이대우(李大愚)
장모님의 시집(幽閒集序(恭人洪氏詩集序))
남병철(南秉哲)
바둑 이야기(奕說)
김윤식(金允植)
집고루기(集古樓記)
당진의 명산 유기(登兩山記)
현재의 시무(時務說送陸生鍾倫遊天津)
김택영(金澤榮)
『신자하시집』 서문(申紫霞詩集序)
양잠법의 교육(重刊養蠶鑑序)
대정묘 중수기(大井廟重修記)
김홍연전(金弘淵傳)
매천 황현 초상 찬(黃梅泉像贊)
여기가 참으로 창강의 집(是眞滄江室記)
안중근전(安重根傳)
이건창(李建昌)
당쟁의 원인(原論)
사슴의 충고(鹿言)
보물 송사(寶訟)
글쓰기의 비법(答友人論作文書)
정일헌의 시집(貞一軒詩藁序)
유길준(兪吉濬)
『서유견문』 서문(西遊見聞序)
이건승(李建昇)
『명이대방록』을 읽고(書明夷待訪錄後)
박은식(朴殷植)
역사를 잃지 않으면 나라를 되찾는다(韓國痛史緖言)
자주와 자강(與孫聞山貞鉉書)
이건방(李建芳)
안효제 묘지명(安校理墓誌銘)
정인보(鄭寅普)
길주 목사 윤 공 묘표(吉州牧使尹公墓表)
첫사랑(抒思)
저자 - 이현일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에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시인인 신위(申緯)를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젠가 ‘조선 후기 한시사(漢詩史)’를 써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꾸준히 18~19세기의 한시 작가들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명청 시대 중국 강남 지역의 문화와 학술에 관심을 두고 조선에 끼친 그들의 영향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한문교육과 부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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