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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가득한 책방/에세이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 문태준 시인의 받아들여서 새로워지는 것들

by 더불어숲 2023. 1. 3.

깊고도 지극한 시선, 삶의 정수에 닿아 있는 순도 높은 문장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고,

눈이 오면 흰 눈송이가 내린 나무가 되고,

새가 앉으면 새의 맑은 울음이 앉은 나무가 된다.

 

 “나무는 눈이 오면 그냥 받아들여요. 눈이 쌓인 나무가 되는 거죠.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새가 앉으면 새가 앉은 나무가 되는 거죠. 새를 받아들여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는 거죠.” (..) 내 내면에 다른 존재의 공간을 만드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배음背音, 나의 기다림, 조용함, 쓸쓸함, 즐거움 같은 것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것이 되어보는 경험은 내가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경험이 된다.

 

눈을 맞으면 재빠르게 털어낸다. 비가 오면 조금이라도 젖을세라 얼른 우산을 편다. 우리는 고통이나 시련, 역경 같은 달갑지 않은 자극에 대해 지극히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그러나 문태준 시인은 삶의 시련이나 역경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면, 곧 그 내면에는 새로운 풍경들이 채워질 것이라고 말한다.

 

책 속 한 토막

20대를 전후한 시기에 나는 몸의 근육을 키웠다. 그것은 자기 보호의 본능 같은 것이었다. 나는 세계로부터 어떤 위협이 거대한 파도처럼 내게 밀려온다고 느꼈다. 세계로부터의 어떤 위협이란 세계가 나의 육체를 억누르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게 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실비아 플라스’가 노래한 것처럼 “나는 과일처럼 내 인생을 감미롭게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어떤 반복을 통해 키워야 할 근육은 마음의 근육이다. 마음이라는 기관에 습관이라는 근육을 만드는 것이 훨씬 유의미하다. 나는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로 했다. 내게 새로이 생긴 습관으로는 첫째, 행복한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뉴질랜드 오타고 대학교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더 행복해지기 위한 네 가지 열쇠는 ‘과일, 자연, 햇볕, 잠’이라는데, 내가 행복의 순간을 늘리기 위해 길들인 습관은 ‘걷기’였다. 하루에 최소 만 보 이상을 걷고, 되도록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좌우로 휘어지는 길을 걸었다. 두 번째는 초조함을 없애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이라면 일찍 시작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약속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미리 기다리고 있는 내가 목격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마음의 탄력과 생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책을 손에 쥐여주고, 음악과 영화가 나의 삶의 시간에 참여하게 하고,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 등이 이것에 포함되었다.

 

몸의 근육을 바꾸는 것보다 마음의 근육을 바꾸는 것이 더 근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5부로 지어져 있다.

1부. 꽃은 맑게 준비되어 우아함을 내밀었다.

2부. 웃음으로 서로 바라볼 뿐

3부. 또 다른 내일이 온다

4부. 나는 문득 그대의 얼굴을 만난다

5부. 가만히 내 마음 옆에 서서

 

1부 꽃은 맑게 준비되어 우아함을 내밀었다
유자와 한 알의 시 · 15
끝까지 가본다는 것 · 18
달은 홀로 가면서 끝까지 깨끗하네 · 20
저 저녁연기는 · 24
막버스와 정류장 · 25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나무가 되지요 · 33
7월의 자두 8월의 포도 · 38
괜찮아? 힘들지? · 40
막 피어나려는 꽃송이처럼 · 42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물결치며 바람의 배가 지나가듯이 · 44
모든 사물에게 형제이고 자매여라 · 46
사랑의 탄생 · 51
아침은 꼭 같은 개수의 과일을 나눠주네 · 54
바람과 물의 은혜를 받은 보트처럼 · 55
언제나 새로운 길 · 56
우리는 아름다움의 고용인 · 58
우주의 헌법은 사랑 · 59
새로운 습관과 100일 · 63
오직 한 생각 · 66
박목월 시인의 편지 · 68
돌마다 산, 새마다 하늘 · 70
애인의 눈에는 세상이 모두 애인 · 72
과일처럼 내 인생을 감미롭게 · 73

2부 웃음으로 서로 바라볼 뿐
걱정이 없는 시간 · 79
땅과 같이 기도하라 · 81
탄생에는 신열과 통증이 따른다는 말 · 82
바다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어부처럼 · 83
고통의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 85
유쾌하고 낙천적인 가젤처럼 · 86
지나가는 그림자를 벗고 단순하게 · 89
걸명소 · 90
차의 여향을 노래하다 · 94
세한삼우 · 96
추사의 일로향실 · 100
소동파의 여산진면목 · 104
내 고향은 고슴도치가 출몰하는 곳 · 106
고독이 자라나는 시간 · 109
두 개의 고독 · 111
저녁의 시간을 맞으며 · 113

3부 또 다른 내일이 온다
내 속의 거인을 깨워라 · 119
나는 항상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 123
걸어가는 사람 · 125
자연으로 더 부드럽게 돌아가다 · 130
댓돌 위에 벗어놓은 두 짝의 흰 고무신 · 135
책은 이 마음을 지켜준다 · 140
놓친 인연 · 143
모든 사물들 속에는 노래가 잠들어 있네 · 144
김수남의 바다 · 149
빛나는 소리들 · 154
밤새 말들이 달아나도 시를 써요 · 157
인류는 한 뿌리에서 나온 영혼 · 162
달까지 올라가는 긴 사다리 · 167
낙하와 잔향 · 169
장회 여울에 배를 띄워놓고 · 171
국경 너머로의 여행 · 172
사랑은 사랑을 기다렸고 나는 외로워 울었지 · 174
노랗고 울퉁불퉁한 모과 · 178

4부 나는 문득 그대의 얼굴을 만난다
소의 배 속에서 살았다 · 185
마음은 산같이 자라네 · 189
행복과 고통은 떨어져 있지 않다 · 192
어머니에게도 어머니가 있으셔서 · 193
산뜻한 동심 · 197
땅과 같은 벗 · 200
뒤집어놓은 항아리 · 202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 · 204
내가 재벌이라면 · 206
두 줄의 현에서 하나의 달콤한 음을 만들어내는 바이올린처럼 · 208
우리는 웃으며 이야기하자 · 210
당신은 나의 안쪽에 가득하네 · 211
위대한 자연과 작은 자연 · 213
씨앗이 자라는 속도를 넘으면 공포만이 자랄 뿐 · 215
이규보가 나눈 돌과의 문답 · 217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겁다 · 219
마음이 죽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 221
여름날과 별 가득한 수박 · 224
여름의 명물은 바람 · 225
여름날의 플라타너스처럼 · 226
여럿의 꽃들이 꽃다발을 이루듯이 · 228
계절이 바뀔 때 · 230
시를 낙엽 위에 쓰네 · 235
가을산의 둘레 · 237
고원과 황락 · 240
조용하고 슬픈 자세 · 243

5부 가만히 내 마음 옆에 서서
묵은 순 자리에 새순 돋듯이 · 251
흘러간 물은 돌아오지 않고, 꽃은 오래 피어 있기 어렵네 · 257
눈 속에 붉은 복사꽃이 펄펄 날린다 · 260
입석처럼 세워둔 작은 다짐들 · 262
모래 만다라 · 265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가자 · 267
자비와 차분함과 통찰력 · 271
일 없음이 오히려 할 일 · 273
객지로의 여행 · 274
베풂의 이익 · 276
마음은 어떻게 쉬는가 · 278
마음을 고요하게 하라 · 282
일터에서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라 · 283
수행자의 식단 · 285
성철 스님의 식사법 · 289
금강산 마하연 · 292
이와 같고 저와 같다 · 295
발밑에 있는 옛길을 모르고 헤매었네 · 298


산문집 곳곳에는 시인이 남긴 여백들로 가득하다.

섣불리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도, 독자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하지도 않는다.

굳게 닫은 철문이 아닌 느슨히 열어둔 옛집의 사립문처럼, 각 꼭지의 글들은 저마다의 결론을 내린 채 닫혀 있는 것이 아닌 그저 가만히 열려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이 여백 가득한 한 권의 책을 읽어가는 동안 자연스레 자신의 존재와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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