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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가득한 책방/에세이

저 불빛들을 기억해 [ 개정증보판 ] - 나희덕 산문집

by 더불어숲 2023. 1. 5.

저 불빛들을 기억해 [ 개정증보판 ] - 나희덕 산문집

우리가 잃어버린 불빛을 기억하기를
시인의 말처럼 “삶이란 그렇게 점과 선과 면이 역동적으로 만나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독자들은 개인과 타인, 그리고 세상이 결국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시인은 개정판 서문을 통해 “이 누추한 삶의 기록을 되살리는 일이 작으나마 우리가 잃어버린 불빛을 기억하는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한 바 있다. 나희덕이라는 한 시인이 걸어온 삶의 길 위에 드리워진 그늘과 통증에는 그 모든 것을 품어 안는 불빛이 깃들어 있다. 그것을 온기라고도, 희망이라고도, 혹은 사랑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다. 시인의 바람대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불빛들을 기억하기를, 그 불빛들로 각자가 내면의 그늘과 아픔을 따스하게 비출 수 있기를 바란다.

 

책 속으로 떠나는 여행

저 불빛들을 기억해

어느 날 저녁, 우리는 복도 끝에 앉아 잠시 쉬면서 맞은편 병동을 바라보았다. 수백 개의 창문들에 불이 켜져 있었고, 그 속에는 각기 다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늘상 보아 온 풍경이지만, 그날따라 불빛 하나하나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 불 켜진 방이라고 늘 행복한 온기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창문들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말했다. “저 수많은 창문들을 보렴. 지금은 병원에 있으니까 주변에 아픈 사람들뿐이지만, 퇴원하면 너는 건강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야 해. 그러다 보면 왜 나만 이렇게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 거야.그때 저 불빛들을 기억해. 저렇게 수많은 방 속에서 병과 싸우고 자신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너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


퇴원을 하루 앞두고 나는 병실을 먼저 떠나는 게 미안해 다른 엄마들과 밥이라도 한 끼 나누고 싶었다. 엄마들을 불러내 중국 음식을 몇 가지 주문하고, 술 한 병을 따라 엄마들과 나눠 마셨다.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잠시나마 그 말간 것에 적시기라도 하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잔을 건네며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따금 종합병원 근처를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불 켜진 창문들을 한참 올려다본다. 저 불빛 중에 하나로 위태롭게 깜박이던 때를 기억하면서, 그 불빛 속에 함께 있었던 아이들과 엄마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다들 잘 있겠지.
어두운 거리에서 불 켜진 창을 바라보는 일이 쓸쓸한 노릇만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그 불빛들을 향해 두 손을 가만히 뻗어 보기도 한다.


혼란과 고통 속에서 던졌던 수많은 질문들의 기록

 

나희덕 시인

1부 [점]은 나희덕 시인이 걸어온 나날들의 자취를 담았다. 

2부 [선]은 존재와 존재 간의 맞닿음, 즉 점으로서 존재하던 개인이 아닌 타인이라는 또 다른 점과 맞닿아 이룬 수많은 선들에 대한 이야기다.

3부 [면]은 제각기 다양한 형태의 선들이 만나 직조해낸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점’이 하나의 작은 세계이자 존재의 내밀한 모습을 나타낸다면, 이 점이 다른 점과 맞닿으며 탄생하는 ‘선’은 개체와 또 다른 개체의 만남을 의미한다. 또한 제각기 다양한 형태의 선들이 만나 비로소 완성되는 ‘면’은 사회 또는 공동체를 뜻한다. 

시인은 점, 선, 면이라는 개념이 회화적 요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 그리고 세상 사이의 축도”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삶이라는 구도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개념이라고 보았다. 

 

목차

개정판을 내며 4
작가의 말 7

1부 점
에덴에서 무등까지 5
518호라는 방 29
구름과 수풀 35
말벌과 함께 살기 40
저 연둣빛처럼 44
식사를 소풍으로 바꾼 저녁 50
무릉은 사라졌어도 54
건천乾川이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58
피아노가 있는 풍경 66
돌멩이가 묻고 있는 것 70
나는 너를 듣고 싶다 82
쓰러진 회화나무의 말 88
서른 살의 아침 96

2부 선
저 불빛들을 기억해 103
가장자리 쪽으로 109
무위당无爲堂 생각 112
아름다운 농부에 대한 기억 116
산양의 젖을 남겨두는 마음 121
나는 이 시장을 사랑합니다 124
타인의 냄새 129
당신을 알기 전에는 133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힘 138
뒤주와 굴뚝 142
이사, 집의 기억을 나누는 의식 148
수녀님, 어디 계세요? 152
영혼의 감기 157
네 밤 자면 집에 갈 수 있어요 160
피어나지 못한 목숨을 위하여 164
영랑의 나무와 다산의 나무 168
일기는 쓰고 있니? 177

3부 면
풀 비린내에 대하여 183
구름 앞에서 부끄러웠다 189
슬픔의 이유를 알 권리 192
죽음과 죽어감 197
통증과 치유의 주체는 누구인가 201
삶을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 206
그늘 속의 의자들 211
무엇을 줄일 수 있을까 214
플러그를 뽑는 즐거움 219
반달 모양의 칼과 길 223
어리석은 자가 산을 옮긴다 232
가지취 냄새나는 책을 찾아서 237
팔 권리와 사지 않을 권리 242
나무 열매와 다이아몬드 246
영양과 뱀잡이수리 251
폭설이 우리 곁을 지날 때 255


나(點)와 타인과의 관계(線)를 이 세계는 건축(面)된다.

점은 스스로 침잠해있기에 자기중심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그리하여 점은 다른 점과 만나 선이 되려고 한다점이 또다른 점으로 움직여 간 궤적이 곧 선인 것이다.”

 

시인은 '나'와 '너' 그리고 '우리'를 점, 선, 면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또 여기에 표현은 하지 않고 있지만 공간이라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 우리 삶에서 나와 너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 꼽으라 하면 사랑 외에 그 무엇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영화 제5원소에서 4원소 즉 물, 불, 흙, 바람에 이것이 빠져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세상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초강력 접착제 '사랑' 시인이 펼치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사랑이 펼치는 이야기게 귀 기울여 보자!

 

늦은 밤 귀가하면서, 이른 새벽 집을 나서면서 듬성듬성 불켜진 집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의 파편들! 저 집에 사는 사람도 이제 들어왔나 보구나. 저 집에 사는 사람도 벌써 집을 나서는구나! 하면서 스스로 위로의 애무를 했던 그 시간들이 나희덕 시인이 말하는 불 켜진 방을 통해 나를 보게 되었다.

 

이 세상은 나만 있지 않기에 외롭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고, 서럽지도 않다. 그래서 힘낼 수 있다. 당신이 힘이 들다면 저기 저기 불켜진 방을 들여다보세요. 분명 당신은 스스로 힘을 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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